경합범 삼타특강

JBtracer 2025. 9. 16. 11:26

「뉴스1 보도」

  추가 기소된 사건에 징역 5년이 선고되어 전체 형기가 47년이 되었다. 이를 바꿔 말하면 경합범에게 합산 형기가 47년 부과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자가 더 정확한 의미이지요. 그런데 정확한 것은 대개 부정확한 것보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위의 기사를 겉핥아 "뭐 새로운 혐의가 밝혀져서 형량이 이빠이 늘었나보네"하고 넘어가는 것은 쉽고 간단하지만, 법적인 당위를 면밀히 따져보는 건 지루하고 성가신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성가신 일을 권하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저는 여러분에게 경합범에 관한 설명을 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제게 선고된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밝힐 일이지 왜 구태여 경합범이라는 법 개념을 논하려는 걸까요? 사실을 주장하는 데 자신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사실관계도 얼마든이 증명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니라 수사기관과 법원이 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데일리안 보도」

  저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었습니다. 법원이 피고인의 권리라며 세금 써서 홍보하고 장려하는 바로 그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서 국민들 앞에 양 측의 주장을 다투어 보자는 것이었지요. 제가 지면 더 엄하게 처벌해도 감수하겠으며 항소도 안 하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강하게 반대했고 법원은 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폐쇄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거꾸로 된 일이지요. 대개는 피고인이 숨으려 하니까요. 우리 사법은 진실에 자신이 없거나 사건을 조작한 게 드러날 것 같으면 억지를 부리고 힘으로 관철시키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법원은 제가 스스로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법원에게' 행한 자기 변호 내용을 2차 가해라고 규정하며 불리한 양형인자로 삼더군요. 그렇게 산출된 추가 형량이 5년인 것입니다. 저는 그런 그들에게 어떤 빌미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행히 법리를 논하는 건 문제 없습니다. 법리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거니까요.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제 법리적 주장을 통해 법리 외의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리에 대한 제 주장이 타당하다면 사실에 대한 제 주장도 그 정도 수준으로 타당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반면 법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부당하다면 사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훨씬 더 형편없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법리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판사가 그 외의 다른 걸 정당하게 평가했을 리가 없으니까요. 이 경합범 특강은 그런 차원에서 준비된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게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여러분 중 누군가는 자신이 이따위 것을 왜 들어야 하냐고 제게 반문할지 모릅니다. 거기에 정직하게 답하자면, 실용적인 면에선 이 특강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특강을 통해 어떤 실용적인 가치를 얻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 점이 실망스러운 분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이렇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종종 유튜브에서 최신 우주론이라던가 양자 현상 같이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의 생활과 무관한 것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답도 안 나오는 UFO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자신의 전공도 아니고 써먹을 일이 전혀 없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그냥 그러는 것이지요.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엔 실용성 없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가령 넷플릭스 영화 대부분은 완전한 허구입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죠. 그러고 보면 우리가 실용성을 따지는 건 우리가 애초부터 하기 싫고 흥미 없는 일을 대할 때 뿐입니다. 대표적으로 수학 공부를 해야 할 때 그렇죠. 즉 실용성은 뭔가를 시작하지 않을 좋은 핑계입니다. 여러분은 제 특강에도 그 핑계를 들이댈 수 있습니다. 한술 더 떠 모욕하고 조롱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기껏 준비한 저로서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이 특강을 충분히 몰입해서 듣는다면 나름대로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파인만 박사가 그랬다죠, 뭐든 충분히 이해하면 재미있다고요. 경합범도 충분히 이해하면 마냥 심심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들어보세요.

  드디어 본론입니다. 경합범이란 무엇일까요? 경합범은 '여러 개의 죄를 한 번에 취급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에서는 여러 개의 범죄를 여러 개로 취급하지요. 그래서 범죄 마다 마다에 별도의 형량을 매겨 형량이 400500년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처벌 방식을 '병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중주의'를 채택하고 있지요. 가중주의는 여러 개의 범죄 중 가장 무거운 죄에 규정된 형의 범위를 가중시켜서 책임을 묻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물건을 훔치고 달아나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때려 다치게 했다면 절도죄와 상해죄에 해당될 텐데, 이 경우 가중주의를 적용하면 더 무거운 죄인 상해죄에 규정된 형의 범위를 가중시켜서 형량을 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중주의는 때때로 오해를 받습니다. 우리는 보통 미국의 처벌 방식이 우리의 것보다 정의롭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요. 병과주의는 하나 하나를 짚어 속 시원하게 묻는 느낌이고 가중주의는 하나의 책임만 강조하고 나머진 흐려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은 가중주의 경합범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에 먼저 해소하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방식이 과연 우리의 방식보다 더 실질적인것일까요? 가령 징역 100년은 실현이 가능한 형벌입니까? 아닙니다. 2125년이 되면 지금 이 순간 지구에 살고 있는 80억 인구 중 살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100년까지 갈 것도 없지요. 이 특강을 나누고 있는 여러분과 저는 5~60년 이내에 지구를 떠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 처벌형이 수 십 년만 넘어가도 실효성이 없는 것입니다. 비례성과 실효성 없이 단지 가혹하기만 할 뿐인 형벌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과 불쾌감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후진국에선 절도범이 잡히면 그게 어린아이여도 손을 으깨버리거나 잘라버립니다. 어느 선진국에선 질서를 위반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 하의를 벗겨 엉덩이를 채찍으로 갈겨버리고요. 그건 속 시원한 정의 구현일까요? 그렇다고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나 그런 체제에서 살고 싶은가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듯 어느 체제 내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 인지상정에 반할 정도로 과하거나 모순되면 그 체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북한을 잘 모르지만 북한에서 외국 문물을 즐겼다는 이유로 국민들이 총살을 당하거나 십 수 년 '교화형'에 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체제가 미쳐있다고 판단하지요. 마찬가지로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전기의자로 사람을 구워 죽이거나 약물을 주사해 죽이거나 수 백 년의 유기자유형으로 유기형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미국의 사법 체계가 미개하고 과하고 모순된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과주의가 가중주의보다 무조건 더 정의롭고 타당하다는 막연한 인식은 오해입니다. 우리는 왜 가중주의를 택했을까요? 처벌의 실효성과 비례성을 두루 참작한 결과입니다. 유기형과 무기형이 실효적으로 똑같다면 굳이 둘을 나눌 이유가 없지요. 유기형은 무기형과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유기형으로 처벌할 때는 가중주의에 입각해 처벌형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늘려 부과하고, 유기형 가중으로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 어려울 만큼 사안이 중대하면 무기형을 부과합니다. , 가중주의는 처벌의 종류에 따른 실효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정리하고 가죠. 경합범은 여러 개를 한 번에 취급하는 방식이랬습니다. 미국은 경합범을 병과주의로 취급하고, 우리나라는 가중주의로 취급합니다. 미국 이야기를 한 건 이해를 돕기 위해 곁들인 것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의 경합범입니다. 가중주의 경합범말입니다. 가중주의 경합범에 관해 논하기 위해 가중주의에 대한 혹시 모를 거부감을 씻어내는 단계까지 완수했습니다. 이제 가중주의 경합범과 마주 앉아 본격적으로 그것을 탐구해 볼 차례입니다. 경합범 가중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까요? 판사가 그냥 엿장수 엿 다루듯 해서야 안 될 일이지요. 당연히 법률에 방법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게 그 법률입니다. 단번에 이해가 안 간다면 지극히 정상입니다. 우리 법은 과거에 엘리트주의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신세대가 은어로 대화하는 걸 알아듣기 어렵듯 구세대가 만든 문장도 애니그마처럼 난해합니다. 호흡이 너무 길고 한 문장에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현병 환우 분의 중얼거림 같지요. 그게 법전에는 심지어 한자로 적혀 있습니다. 여러분이 감옥에서 법전을 빌려 한자로 된 위 문장을 접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마법 천자문 키즈일지라도 꾸짖을 갈 자가 튀어나오지 않을까요. 해독이 필요합니다.

 해독> 
여러 개의 죄(경합범)를 저지른 자에게 사형을 선고할 경우 사형 이외의 형벌을 같이 부과할 수 없다(사형이 모든 죄 흡수). 
무기징역을 선고할 경우 무기징역 이외의 형벌을 같이 부과할 수 없다(무기징역이 그 미만 죄 흡수). 
유기징역을 선고할 경우 가장 형 범위가 무겁게 규정된 죄의 상한(장기) 2분의 1 가중시킨 범위 내에서 형을 정한다(여러 개의 죄 중 가  장 무거운 죄의 상한이 10년이면 15년으로 늘린 범위 내에서 형 선고). 
벌금형의 경우 액수가 가장 무거운 죄의 상한(다액) 2분의 1 가중시킨 범위 내에서 액수를 정한다. 
과료와 몰수 처분만 중복해서  부과할 수 있다.

 

  애니그마를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것도 마냥 간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전보다는 이해하기 쉬우리라 믿습니다. 요지는 여러 개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여러 종류의 형벌을 남발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효성 없는 처벌도 안 되고요. 살인을 10건 저질렀다고 해서 사형을 10개 선고할 순 없습니다. 사형도 주고 무기징역도 주고 유기징역도 주고 아낌없이 줄 순 없습니다. 모든 범죄를 포괄해 하나의 형을 고려합니다. 사형이면 사형입니다. 두 개 짜리 세 개 짜리 사형이라던가 유기징역을 얼마간 살리다가 죽이는 사형 같은 건 없습니다. 무기징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형과 무기징역은 그 하나의 형벌에 모든 죄가 흡수됩니다. 직관적으로 당연한 얘기죠? 사형과 무기징역은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이해가 필요한 건 유기징역입니다. 2분의 1이니 뭐니 계산이 들어가죠. 숫자가 개입되면 머리 아픈 분이 많은데 말이에요. 어렵지는 않지만 약간 복잡합니다. 그래도 세상살이만큼 복잡하고 골 아프진 않으니 계속 들어보세요. 미적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규정은 상한이 어떻게 되죠? 최대치 말입니다. 7년이죠. 최대 7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겁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댄스를 춰도 판사 마음대로 7년을 초과한 형을 부과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의 범죄가 여러 개라면,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위의 인신매매죄라면, 위의 상한이 2분의 1 가중되어 ‘106개월이 됩니다. 무조건 106개월이 선고돼야 하는 게 아니라 그 범위 내에서 부과한다는 거에요. 8년을 주든 9년을 주든 106개월을 주든 판사 마음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106개월을 넘길 순 없습니다. 피고인이 최후진술에서 기미가요를 불러도요. 그치만 그런 사람이라면 세상살이 자체가 쉽지 않겠죠. 오히려 감형을 좀 해줘야 할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은 상한이 어떻게 됩니까? 3년 이상. 3년이 최저치죠. 3년은 하한입니다. 상한은 어떻게 될까요?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상한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엔 30년을 상한으로 합니다. 위 법은 즉 ‘3년 이상 30년 이하가 범위인 거죠. 30년이냐고요? 제가 정한 건 아닙니다. 형법 총론에 의한 거지요.

  형법은 총론각칙으로 나뉩니다. 형법은 1조부터 82조까지가 총론이고 그 이후가 각칙입니다. 각칙은 앞서 본 인신매매죄나 강간죄처럼 개별 범죄를 규정한 형법을 가리킵니다. 총론은 그 각칙을 의율함에 있어 준수해야 할 전제입니다. 총론은 형법 '전체의' 룰입니다. 그래서 위의 형법 42조가 모든 각칙에 적용됩니다. 그리하여 별도의 상한이 없는 모든 범죄에 대해 유기징역은 30년을 상한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각칙에 ‘3년 이상이라고 한계 없이 규정되어도 자동적으로 ‘3년 이상 30년 이하로 해석되는 것이지요. 너무 많은 개념이 튀어나오니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지요? 근데 더 많은 서브 개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치만 다 연결된 거에요. 복잡하게 느끼지 마세요. 간단하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방금의 설명도 결국 요점은 모든 범죄에 대한 유기형의 한계는 30년이다라는 거에요. 총론이니 어쩌니를 보여드린 건 근거를 제시하기 위함이지 그 자체를 우리 모두가 깊이 음미하고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비자격자이기 때문에 그냥 "유기형 한계는 30년입니다요" 하면 의심스러울 수 있으니까 근거를 일일이 제시하는 겁니다. 

  유기형의 한계 30년에 경합범 가중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지요? 2분의 1이 가중되니까 45년이 됩니다. 그래서 가중주의 경합범의 유기형 한계는 45년인 겁니다. 절대 한계죠. 어떠한 경합범도 이것을 초과할 순 없다. 그걸 초과할 정도의 사건엔 사형이나 무기를 선고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위에서 본 형법총론에 '유기형을 가중하는 때에는 50년까지로 한다'는 문구가 마음에 걸릴지 모릅니다. '가중은 50년까지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 있어요. , 가중은 50년까지 됩니다. 근데 우리는 경합범 가중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가중은 경합범 가중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누범(출소하고 얼마 안 가 또 범죄를 벌인 경우) 가중의 경우 '2배' 가중됩니다. 상한이 2배 늘어나는 거에요. 30년을 2배 하면 어떻게 되지요? 60년이 됩니다. 60년이 되면 너무 가혹하잖아요? 우리의 수명으로 완수하기 어렵죠. 그래서 그런 경우 한계를 50년으로 두겠다는 게 형법 총론의 50년 규정입니다. 즉 가중주의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최최최종 가중 한계를 60년이 아니라 50년으로 낮추어 두겠단 것입니다. 경합범 가중과는 무관한 내용이죠. 경합범 가중의 한계는 45년입니다. 유기형 기본 상한이 30년이라고 해서 모든 죄에 대한 유기형이 30년까지 가능한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좋습니다. 우리는 유기형 한계가 30년이고 경합범 가중시 한계가 45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경합범을 취급할 수 있습니다. 범죄 혐의가 여러 개면 그 중 가장 무거운 죄의 형 범위를 2분의 1 가중해 선고형을 정한다! 근데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과연 현실이 그리 간단할까요? 기소가 나뉘어 이뤄지면 어쩌죠? 실제로 검찰은 예부터 피고인을 고통주기 위해 기소를 나눠서 제기하는 양아치짓을 즐겨 사용해왔습니다. ‘쪼개기 기소라고 하는 클래식한 사법적 고문 방식입니다. 여러분이 검사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검사는 여러분의 혐의를 나눠서 1년에 한 번씩 기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재판이 각기 이루어지는데 경합범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지요? 그런 경우는 많습니다. 그래서 별도의 법이 마련되어 있죠.

  이제 또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 때입니다. 오마카세처럼 끝도 없이 나오는 거에요. 근데 오마카세와 달리 반갑지 않죠? 공짠데도요. 그래도 플레이팅을 잘 해드릴 테니 드셔보세요. 법이 복잡한 걸 뭐 어쩌겠습니까. 시중에 '수식 없이 배우는 수학'이니 '쉽게 배우는 영어'니 그런 책들이 많지만 정보 없이 배운다거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지식은 없습니다. 뭔가를 알려면 정직하게 알아가야 할 뿐입니다. 그러려면 인내심이 좀 필요해요. 힘이 되는 얘길 하나 해드리죠. 이 특강을 듣는 사람 중 50%는 들어오자마자 조회수만 올려주고 나갔을 겁니다. 30%는 미국 얘기 지나서 애니그마 등장했을 때 떠났습니다. 여러분이 이 대목을 듣고 있다면 상위 20%의 인내심을 가진 분인 겁니다. 이제 상위 10% 구간으로 가는 거에요.

  경합범은 전단 경합범과 후단 경합범으로 나뉩니다. 전단은 위 법 문언상 전단(앞부분)이 가리키는 경합범이고 후단은 후단(뒷부분)이 가리키는 경합범입니다. 전단 경합범은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 개의 죄', 후단 경합범은 '확정판결 이후에 기소된 죄'를 뜻한단 거에요. 매번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라고 하기 성가시니 이름을 붙인 겁니다. 예를 들어 이해해보죠.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죄·직권남용죄·외환유치죄 등으로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지요? 그 모든 혐의가 경합범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단 경합범으로요. 전단 경합범은 앞서 우리가 배운 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내란죄가 유죄라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나머지 혐의는 거기에 흡수될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검찰이 다른 혐의로 또 기소하면 어떻게 되느냔 거지요. 내란죄 재판이 다 끝나 확정된 후에 또 기소하면 말이에요. 그럴 수 있잖아요? 그게 후단 경합범입니다. 재판이 끝났는데 검찰이 뒤늦게 기소해서 또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죠.

  후단 경합범은 이미 끝난 재판과 동시에재판한다고 가정해 취급합니다. 판사가 모든 사건이 한 번에 취급되었을 경우의 가능성과 형평을 고려해 판결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검찰이 백 번을 쪼개 기소하더라도 별개의 형벌이 부과될 순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란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후에 또 기소가 되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위 법률에 의해 내란죄와 동시에 심판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해야 하므로 공소가 기각되어야겠죠. 아니고서야 가중주의가 무력화될 테니까요. 그러면 유기형에선 어떡하죠? 유기형 가중의 한계치를 선고받은 이에게 또 기소가 되면 어떻게 되어야 하죠? 전단과 후단의 합산형기가 한계치를 초과한다면 경합범 관련 법률에 위배되므로 추가형은 부과될 수 없습니다. 기소가 몇 번 거듭되건 경합범 가중의 한계치인 45년을 초과하는 형은 부과되면 안 되는 거에요.

  자, 첫머리로 돌아갑시다. ‘경합범에게 합산형기가 47년 부과되었다는 문제로 특강이 시작되었지요. 그것은 경합범 가중의 한계를 넘은 것입니다. 그것은 법률에 없는 형벌입니다. 법률로는 도출할 수 없는 형량이니까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치만 힘이 없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됩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법은 그런 겁니다. 재판 과정에서 저는 판사에게 알아듣기 좋게 경합범 법리를 설명해주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수준이 높은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50%에 속하는 부류였죠. 그들은 제 설명에 대해 피고인의 독자적인 견해라고 폄하하더군요. 그건 정말 웃기는 소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제 설명은 제 생각이 아니었거든. 학계의 이해였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1판, 박영사, 이재상 저, 583~584면」

  보시다시피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한 설명은 법학 교과서에 나오는 당연한 이론을 그대로 전한 겁니다. 제 생각이 아니에요. 판사들은 뭘 모르고 피고인을 묵살하려다 법학 상식을 부정하게 된 거죠. 제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설명하면 그들은 그것도 아니라고 평가할 겁니다. 현실의 법정에선 법도 상식도 통하지 않습니다. 판사들은 법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무시합니다. 그들은 충분히 공부하거나 숙고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법률적 소신이나 신념은 우리 기대만큼 견고하지 않아요. 막연한 권위로 피고인을 굴복시키는 게 현실의 법정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법기관의 권한을 회수하고 분산하고 축소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성실한 적은 없다는 프랑스 속담이 확인해주듯, 사법 권한이 어느 한 집단에게 집중되거나 너무 강한 힘을 주면 그 권한과 힘은 오히려 그들을 나태하고 불량하게 만듭니다. 검찰만 해도 그렇죠. 온갖 힘을 몰아주니까 관봉권 띠지조차 맡길 수 없는 존재가 된 거에요. 그런 집단이 여러분을 수사하는 겁니다. 필요에 따라 얼마나 많은 조작이 일어날까요?

  끝낼 시간이 되었군요. 인내력 1%에 등극한 걸 축하합니다. 상으로 여러분은 경합범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덤으로 저에 대한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제가 이 특강을 통해 전하고 싶은 건 저의 억울함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주지시키고 싶은 건 우리 형사법상 가장 기본 전제라 할 가중주의마저 붕괴될 정도로 법치가 망가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모두에게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판사가 법률을 무시하는데 그보다 추상적인 '진실'을 준수하리라 확신할 수 있나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법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여러분의 권리가 보장되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치열하게 공부해서 타당한 논리와 사실을 제시하면 판사가 들어주리라 믿으시나요? 여러분이 이 특강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답은 '아니오'일 것입니다. 우리 법치는 예측불허이며 이상한 곳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그걸 막으려면 우리가 사법의 주장을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버려야 해요. 보셨다시피 사법부가 법률을 준수하지 않는데 그 판단을 왜 존중해야 하죠? 그 판단을 존중하면 법치가 망가지는데 말이에요. 오류를 지적하고 거부하고 저항하는 게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입니다. 당사자들이 두려움을 딛고 판결에 동의할 수 없으며 사법이 틀렸다고 당당하게 외쳐야 합니다. 주변인들은 사법이 피고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켜 토론을 무효화하고자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을 때 고개를 끄덕여주면 안 됩니다. 사법부를 향해 "당신들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어. 당신들은 경합범도 준수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당신들은 진실도 준수하지 않았을 거야. 조주빈의 말이 더 옳아." 단호하게 선을 그어 공개토론에 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실 수 있을 거에요. 경합범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1%에 해당하는 위인들이니까요. 긴 시간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수술을 앞둔 요즈음 사법부에 딱 어울리는 격언 소개하며 특강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배움을 멈추면, 경청을 멈추면, 관찰과 질문을 멈추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릴리언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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