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거울 속의 괴물

JBtracer 2024. 12. 13. 12:10

  윤석열은 자신의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정치적 생명과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는 즉사했다. 그는 내란의 수괴, 괴물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괴물인지조차도 모르는 그런 괴물. 윤석열의 묻지마 계엄은 민주주의와 온 국민을 향한 칼부림이었으므로 옹호의 여지가 없으며,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제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리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이므로 사회 및 그 자신을 지키려면 구금되는 게 최선인 것이다. 내 동료가 될 시간이다.

  한편, 그와 별개로 작금의 사태엔 우리 사회의 공모혐의가 인정된다. 윤석열은 사회 다수의 지지와 선택을 받아 선출된 대통령이다.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정당한 룰에 따라 우리의 집단 지성에 의해 추대된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실패는 우리 모두의 실패다.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한 번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또다시, 그것도 더 심각하게 실패하고 만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지금 우리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스스로가 절대악에 맞서는 민주투사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우리는 괴물 윤석열에게 승리를 거둔 승자라고 스스로를 포장하며 세뇌시키고 있다. 당연히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괴물과 함께 몰락하고 실패했을 뿐 결코 승리한 게 아니다. 윤석열이 이해할 수 없는 착란에 빠져 있듯, 우리는 우리대로 저마다의 착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우상을 세우고 싶은 욕망과 무너뜨리고 싶은 욕망이 공존한다. 우리는 호감이 가는 대상을 발견하면 그 사람이 가진 실제의 능력과 미덕보다 높은 평가를 부여하며 극찬하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사람을 수렁에 처박고자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길 좋아하지만, 우리가 만든 영웅을 괴물로 전락시켜 처단하는 건 더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가 세운 우상들은 우리의 그 모순된 감정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시험당한다. 우리 중 다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자가 아니라 멀리서 훈수 두는 관전자이자 냉정한 평가자로 남고자 하며 돌을 던지고 야유를 퍼부을 준비만이 되어 있을 뿐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자. 부족한 의료 인력과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수십 년 된 고질적인 숙제로서 결단력 있는 태도가 아니고서는 한치도 개선될 수 없다는 사실이 수 차례 검증된 일이다. 우리는 내내 그 해결을 촉구해 왔다. 그런데 막상 해결하려 들면 입 닫고 지켜보다가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깊어질 즈음 앓는 소리를 시작하며 정부를 압박한다. 정부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며 정부의 접근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성토하면서도 타당한 접근법이나 대안은 절대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번번이 일은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해결을 촉구한다. 재난에 있어선 어떠한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예측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슬픈 비극이 발생하면, 다 같이 반성하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걸 왜 예측하지 못했냐며 힐난하고 돌 던질 대상만 요구한다. 변명을 유도하고는 비극 앞에 자기 살 길만 찾냐며 또 힐난하고 임의로 죄인을 설정해 조리돌림을 하고 그에게 무죄가 선고되어도 수긍하지 않는다. 외교에 있어선 속도감 있고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모든 방법에 다 반대한다. 우리를 위해 마련된 추도식에 참여하는 게 굴욕이라며 가로막고, 참석을 안 하기로 하면 늦었다고 욕하고, 참석을 안 한 탓에 상대국이 소극적인 스탠스로 전향하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놀아났다고 욕한다. 리스크를 알면서도 선출해 놓고는 계속 그 리스크를 쑤시고 헤집으며 우리가 세운 우리의 얼굴이 노골적인 언어와 참담한 수준으로 사죄하고 빌기를 바란다. 우리가 선출한 우리의 대표가 만천하에 굴욕적이고 수치스런 태도와 장면을 보이길 기대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아래 우리의 손으로 세운 우상은 서서히 일그러져 괴물이 되어갔다.

  괴물 윤석열의 정치는 끝났다. 그는 실패했고 망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어쩌면 망하는 데조차 실패한 게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므로 그것을 앞으로도 반복할 것이며, 우상을 세우고 부수길 거듭하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돌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거울이다. 거울에 번번이 괴물이 비친다면, 깨야 할 것은 거울일까 자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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