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감옥에서 맞는 서른

JBtracer 2025. 12. 30. 13:16

   오 년 넘는 구치소 생활은 참 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쏜살같은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이 담긴 긴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나는 마치 인생을 여러 번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서른이 되어 있습니다. 감옥에서 맞는 서른. 이십 대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내고 삼십 대의 전부를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채로 맞이하는 이 서른은, 아무래도 여느 서른과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분기점이 아니라 한결같은 길의 복판처럼 느껴지는 서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서른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 서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은 앗아가는 것만큼 다른 것을 채워줍니다. 그 채워지는 것들은 자신이 이전에 간과하며 살아온 것들입니다. 늘상 간과한 채 살아온 것들인 만큼 계속 간과되기 쉬워서 그것들을 알아차리려면 상당한 주의력과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의 경우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간과했던 게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꼭 감옥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큰 상실을 맞아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것입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살다 모든 걸 잃고 난 뒤에, 불현듯 주머니 속 무언가 손에 잡히거나 눈에 들고, 그것을 자꾸 만지작거리고 바라보다 보니까 실은 그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험. 어떻게 이토록 중요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중요하다 믿으며 살 수 있었는지 스스로가 납득되지 않는 경험. 그리하여 이제라도 그것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경험. 나의 이십 대 후반은 그 경험의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어느 시골에 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삶. 그것은 흔히 우여곡절 끝에 얻은 맑게 갠 삶에 붙이는 말이지만, 나는 내 앞에 놓인 삶도 새로운 삶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폭풍이 온통 휩쓸고 가 모두가 떠난 땅에 홀로 남은 삶일지라도 새롭기는 새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진짜 이야기는 그런 땅에서 시작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진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되는 법이지요. 이전보다 괜찮은, 진짜 이야기가 말입니다.

  한때 내가 썼던 엉망진창의 이야기에 고통당한 모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다 끝났으므로, 더욱이 완전히 망했으므로, 비로소 진심을 전할 수 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의 새로운 삶은 그분들에게 꾸준히 용서를 구하는 그런 삶이 될 것입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26년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향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호남 사람은 아니지만 서로 사랑하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는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한 해를 꿈꾸고 계십니까? 어떤 꿈을 갖고 있기에 여기까지 와서 나의 넋두리를 읽고 계십니까? 답이 무엇이건 내가 드릴 말은 하나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