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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디지털 성범죄

JBtracer 2024. 9. 4. 09:51

「24.08.24 파이낸셜 뉴스 中」

  우리 사회는 성 범죄에 유독 민감하다. 태아를 포기하는 과정이 담긴 반생명윤리적 유튜브의 경우 게시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았지만 고영욱이 반려견과 음악을 듣는 유튜브는 적극적으로 차단당했다. 전현직 깡패나 마약전과자 등등은 범죄 경험을 묘사하는 수준까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만 성범죄자는 숨소리도 보장이 안 된다. 이는 헌법상 차별금지원칙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용인된다. 개헌이 필요없다. 이미 우리 헌법은 세태에 따라 변질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법률적 책임을 다한 고영욱의 사회적 권리가 묵사발 나는 지경이니 현재진행형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감도에 비해 실체에 대한 이해도는 땅꺼짐 수준으로 낮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상기해 보자. 언론은 하얀색 플라스틱 가면을 쓴 남자들이 음침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한편 절망에 빠진 여성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는 이미지로 모든 디지털 성범죄를 묘사한다. 그와 동시에 언론 및 자칭 전문가·공익신고자들은 하나같이 'N번방 사건'을 '디지털 성범죄'와 동의어로 취급한다. 제 2의 N번방 사건, 호주판 N번방 사건, 서울대판 N번방 사건, 뭐 이런 식으로 모든 디지털 성범죄를 N번방의 하위 집합으로 규정 짓는다. 그리고는 'N번방 사건의 주범은 조주빈'이라고 전제한다. 어떤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건 그 자초지종을 약간 설명한 다음 목에 깁스를 한 주빈이가 뒤뚱뒤뚱 등장하는 자료화면을 넣고 자칭 전문가들의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인터뷰 음성을 깔면 기사 하나 뚝딱이다. 

「24.08.26 매일경제 딥페이크 보도 中」

  그 결과 '디지털 성범죄=N번방=조주빈'이라는 삼위일체 공식이 성립한 지 오래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사회적 이해가 형편 없음은 물론이다. 대개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의 나체사진을 얻어낸다→그것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피해자는 이에 따라 끝없이 성을 착취 당한다···」

  이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 내 보편적 인식이다. 가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진배 없는 논리 구조인데, 언론 보도가 망상적 이해 내에서 이루어진 결과다. 당연히 이와 같은 인식은 현실과 무관하므로 아무런 순기능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두말하면 입아프지만 나는 N번방 사건과 관련이 없다. 조주빈은 N번방 사건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라고 주장하는 건 '테라 루나 사태의 뱅크먼 프리드'나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의 김만배'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 없는 헛소리다. N번방 사건은 대명사로 쓰여선 안 되는 고유명사다. 문형욱이라는 사람이 벌인 고유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공보」

   N번방 사건은 세간에 알려져 있듯 '음란물 유포 협박'에 의한 범죄가 아니다. 트위터에 익명으로 나체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일명 일탈계)의 계정을 해킹해 개인정보를 탈취한 뒤 경찰인 척 연락해 "일탈계 운영 사실로 처벌하겠다"고 협박해서 이루어진 범죄다. 즉, 피해자들은 음란물 유포가 아니라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범인의 요구에 응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연락은 '라인' 메신저 등을 통해 이루어졌고, 텔레그램은 '유포의 창구'였다. 유포 채널의 이름이 1번방·2번방·3번방··· 이런 식이어서 통칭해 'N번방'사건이라 불리게 되었다. 협박의 빌미가 형사처벌이었기 때문에 자해 요구에 응하는 등 피해의 수위가 상해에까지 이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런 N번방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N번방 사건의 범인은 문형욱이다. N번방 사건에 대한 나의 설명은 대법원 공보 등을 통해 파악한 것임을 밝혀 둔다. 

  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동안 기본적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관심이 높았는데 어찌된 일일까? 이유는 다름없다. 쥐뿔도 모르면서 공명심만 채우기 급급한 '가짜 해결사'들에게 마이크를 맡겨 놓은 탓이다. 가짜 해결사들은 목적이 '관심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을 왜곡시키길 주저하지 않으며 기름으로 불을 끄겠다고 나선다. 트로트 가수에게 마이크 파워 밀리는 실패한 청년 정치인을 배출했던 모 단체가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에다 'N번방'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진의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N번방 사건은 그 사실관계상 딥페이크 사건과 하나도 겹치는 게 없다. 그런데 왜 '서울대 N번방 사건'일까? 답은 간단하다. 수 년 전 일었던 N번방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차용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높여 여론을 형성하고 사법부를 압박해 처벌 수위를 끌어 올리는 데엔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해당 사건에 있어 양형 기준의 2배가 넘는 형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적 해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장기적으로 볼 때 사법신뢰도의 저하를 초래한다. 그저 공분만 계속 높아지는 공분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이어질 뿐이다. 

   돌이켜 보자. N번방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된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신상공개·범죄집단조직죄 의율·수 십년의 중형·쪼개기 공소 등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처방이 거듭되었다. 내가 그 대표적 표본이다. 옛날로 치면 육시를 내 광화문에 걸어놓은 격이다.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는 여러가지 형태로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딥페이크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처방이 완전하게 실패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그런데 우리사회 내 가짜 해결사들은 주구장창 신상공개 및 처벌 수위 강화만을 부르짖고 있다. 

「24. 08. 29 부산일보 보도 내용 中」

   정부·정치·언론·여론은 가짜 해결사들에게 휘둘린다. 처벌형이 5년에서 7년으로 올라간다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범죄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혹은 재발을 방지한다는 교정적인 측면에서, 혹은 응보적인 측면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42년의  파격적인 충격요법으로도 안 된 게 7년으로 될 리 없다.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이에 가짜 해결사들은 처벌 수위를 음주측정 하듯이 더더더 올리면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모든 범죄의 처벌형을 최대 사형으로 열어두고 몇 명 본보기로 죽이는 게 더 즉효일 테다. 그런데 법치는 왜 그런 식으로 통쾌한 액션을 못 보이는 걸까?  그렇게 되면 법치가 오히려 권위와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모기에게 대포를 쏘고 쥐를 소탕하기 위해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미치광이 해결사라면 그건 그 자체로 위험이다. 

   해결을 위해선 다른 것보다 사안을 정직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있는 그대로 테이블에 오른 상태에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호들갑을 참아야 한다. 급하면 자기도 모르게 불난 데 기름 같은 걸 끼얹게 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신종 범죄다. 우리 모두에게 낯선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첫 단추는 위험하며, 그 종류와 태양에 맞는 이해와 논의가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가해자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예컨대 N번방 사건의 경우 재발을 막기 위해 텔레그램을 규제할 수 없으니 비교적 제재가 용이한 트위터의 일탈계를 단속해 차단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가짜 해결사들은 일탈계를 더러 "어른의 시각에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청소년들의 자연스러운 놀이 문화"라고 옹호하며(20년도 중순 모 월간지에 정말로 그런 주장이 실렸다) 잠재적 피해자를 예방하는 조치를 논의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들은 사태의 구조를 개선하려는 거의 모든 논의에 2차가해 딱지를 붙이고 오직 처벌 강화만이 답이라고 강변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24. 08. 29 아시아경제 보도 中」

  이준석이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불안이 실제보다 과장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자 가짜 해결사들은 이준석을 비판한다. 이준석이 사건의 규모와 젠더 갈등을 언급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게 가짜 해결사들의 시각이다. 그런데 본질을 흐리고 있는 건 실상 가짜 해결사들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면 가담자가 수 십만 명이라는 식의 이슈화가 흔하게 시도된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근거 자료를 보면 수 천 명의 총원 옆으로 '온라인 13명' 따위의 궁색한 수치가 엿보인다. 텔레그램 내 유저 수는 허수가 대부분이고 봇이나 유령 계정도 인원 수로 집계된다. '동시접속자'가 실제 현황이다. 즉 총원을 볼 게 아니라 '온라인 13명'이 실체라는 것이다(취재원들을 포함해서). 상식적으로 애먼 사람을 합성해서 명예훼손을 즐기는 사람들이 20만 명 씩이나 있을 리가 없다. 이는 실제로 누구든지 직접 언론 보도에 활용되는 캡쳐 사진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죄다 '온라인' 10명 안팎일 것이다. 즉 우리 사회는 그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온라인13명'에게 '20만 명 급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급하게 법을 고치고 양형기준을 파괴하고 계엄령이라도 필요할 것처럼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연일 똑같은 수준의 보도가 마치 속보인 양 반복되고 딥페이크가 국가적 최우선 당면 과제가 되어 버린다. 이로써 과잉규제가 난무하고, 그 미봉책들은 다 소용이 없고, 바닷물로 갈증풀기 대회가 계속되는 악순환이다. 이준석은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엔 이성적 판단이 설 자리가 좁아 자극적인 이슈에 찬물을 끼얹으면 일단 욕을 먹는다. 반면 가짜 해결사들의 캠프 파이어엔 사람이 몰리고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게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조주빈이 N번방의 주범으로 기억되는 한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 13명이 20만 명으로 감각되는 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사건마다 사실관계도 규모도 모르는 채로 무슨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해결하려면 알아야 한다. 알려면 보고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고 듣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가짜 해결사들의 파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사이비 굿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우리에게 답은 없다. 이상과 같은 나의 주장에 대해 혹자는 취지를 곡해하고자 할지 모른다. 조주빈이 N번방 주범이라고 불리는 데 억울함을 표출했다거나 디지털 성범죄를 옹호했다거나 안하무인 태도로 훈수를 뒀다거나 하는 식으로 '괘씸하게' 포장할지도 모른다. 뭐든지 삐딱하게 바라보고 갈등과 멍석말이를 조장하는 걸 낙으로 삼는 '사회이슈 딥페이크꾼들'이 있다. 그 역시 가짜 해결사에 속한다. 그런 가짜 해결사를 대비해, 어디선가 주워들은 에드몽 웰즈의 격언을 주문처럼 남겨 둔다. 

   " 나는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게 아니다. 

    이미 나와 생각이 같은 이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